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는 토요일 오후 2시 삿포로 출발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요일 밤에 오타루에서 1박을 한 것은, 그래도 남들 다 가는 여행지 한 곳은 가보자고 한 덕분이었다. 그나마 원래 4박 5일의 일정을 괜히 5박 6일로 늘여서 시간을 번 덕분에 오타루에 갈 수 있게 된건데, 돌이켜보니 그렇게 안했으면 쿠시로에서 열차로 달려온 대로 비행기에 몸을 싣거나, 기차를 놓침과 동시에 비행기도 놓칠뻔 했다. 특별히 러브레터를 사랑하지도 않고 - 러브레터는 藤井樹ロイヤルストレートフラッシュ가 나오는 도서관 씬 말고는 좀 재미없다. - 오타루에 꼭 가보고 싶었던 것도 아니지만, 하필 오타루였던 건.. 하코다테는 너무 멀어서였달까.
우리가 묵었던 グリーン ホテル아침 일찍 (8시) 오타루 관광(?)에 나섰다. 시간은 많지 않았다. 대략 11시에는 신치토세 공항으로 출발해야 했다. 그래도 바다도 보아야 하고 운하도 보아야 하고 오르골 박물관도 가 보아야 했다. 오타루역은 언덕 위에 있고, 역을 나오면 바로 바다가 보인다. (물론 어제 도착했을 땐 밤이었기 때문에 몰랐다). 우리가 묶었던 그린 호텔은 큰길을 따라 언덕아래로 한 두 블럭 내려가면 바로 보이는 곳이다.
小樽역 앞에서 바다가 보인다. 저 바다는 동해. 사진 중앙 왼쪽 육교 위로 그린호텔이 보임호텔을 나서서 바로 마주친 것은 기찻길. 그러나 더이상 기차가 다니지 않는다고 막아놓은 기찻길이었다. 안내에 따르면 홋카이도 최초의 철도라고 한다. 1985년부터 이미 기차는 다니지 않지고 기찻길은 산책로가 되어 있었다.

딸랑딸랑 종도 한 번 땡겨본다. 아침부터 큰소리내면 민폐라고 해서 종은 안 울리고 그냥 당겨만 봤다.

간밤에 산책한 코스 그대로 남쪽으로 내려왔다. 관광안내소.. 이지만 아직 문 열기 전. 시계가 8시 24분을 가리키고 있다.

간밤에 야경사진을 찍은 다리 위. 야경과 비교해보자


이쯤 왔더니 이제 배가 고프다. 지나가다 왠지 맛있어 보이는 식당이 보였는데 문 앞에서 한참 서성이다가 그냥 지나쳤다. 왠지 들어가면 메뉴판 같은건 없고 가정집 방 안에 상을 펴줄 것 같은 느낌이라서 정말 들어가보고 싶었는데, 주문할 자신이 없었달까.

이 즈음에는 관광객들이 움직일 시간이 되었는지 단체 관광객이 틀림없어보이는 무리들이 떼를 지어 이동하고 있었다. 우리도 그들을 따라 결국은 관광객들을 위한 거리로 접어들었다. 꼭 메이지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나올법한 거리랄까. 대부분은 식당이나 기념품점이다..

나란히 앉아있는 猫
홋카이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KUMA. 쿠마는 곰.그리고 가장 먼저 보이는 가게에 들어가 밥을 먹기로 했다. 정말 '아무데나' 들어갔다. 이즈음에는 계획이고 머고 없었다. 될대로 되라, 랄까. 신군이 주문한 것은 연어알만을 덮은 덮밥, 이쿠라동. 신군은 저 연어알만 덮은 덮밥은 정말 느끼해서 다 먹기 힘들거라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도전해본 것이었다. 아바시리에서도 같은 이유로 연어 반 연어알 반의 덮밥을 선택했었는데, 그때는 재료도 신선했고 맛있었어서 연어알만이라도 충분히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음, 그냥 소원성취랄가. 나는 또 라멘. 맛은 둘다 그냥 평범했다. 드디어 관광지에 와 있다는 느낌이었달까.


배를 채우고 난 뒤에는 오르골 박물관으로 향했다. 나는 진작부터 양가 어머님들의 선물로 오르골을 생각해두고 있던 터였기에 '안 가면 곤란한' 곳이었다. 시간이 여유롭지는 않았지만 거리 구경은 하면서 다녔다. 초콜렛 시식도 하고, 유리 공방도 한바퀴 휙- 돌아보고. 신군은 유리공방 입구의 유리로 만든 빨간 돼지가 날 닮은게 이쁘다며 (원래 용도는 저금통인 듯 했다) 사고 싶어 했는데, 일단 오르골을 사러 가자고 하고는 돌아올 때는 정말 여유가 없어서 그냥 와버렸다. 6개월이 지났지만 지금도 잠깐잠깐 아쉽다. 그러니까 결국 신혼여행에서 남겨온 것은 지금의 이 여행기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지라. (아, 물론 삿포로 장터에서 산 신군의 슬리퍼가 있지만.)



아.. 저 사케 한 모금 진짜 먹고 싶었다.
어느 도시를 가나 꼭 찾아보는 우체국.
오르골 박물관 옆의 캐릭터 하우스. 저 레몬색 푸우곰은 어쩐지 좀 엽기, 옆에 까맣게 된 미키와 미니도 슬프고, 반쯤 쓰러져 있는 루시는 어떻고.
제법 꽤 많이 걸은 끝에 오르골 박물관을 찾았다. 찾았다는 기쁨도 잠시, 그동안 한국 관광객은 커녕 일본 관광객, 아니 현지 주민도 찾아보기 힘든 지역을 며칠간 여행한 터라 바글거리는 인파에 혼이 반쯤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몇시까지 시계탑 앞으로 오세요' 같은 소리를 힘껏 외치는 가이드분을 뒤로 하고 모르는척 들어갔다. 듣던대로 다양한 종류의 오르골이 2층 건물 구석구석 펼쳐져 있고 - 이런 부분은 많은 사람들이 사진찍고 얘기한 그대로라서 조금 재미가 없다 - 신군과 의논 끝에 어머님들을 위한 크리스탈 오르골 두 개를 골랐다. . 솔직히 내 몫으로 하나 사고 싶은 맘이 없지 않았지만 그걸 들고 서울에 갔다가 다시 필라델피아로 들고 갈 생각을 하니, 그냥 관두자 싶었다.
오타루 안왔으면 어쩔뻔 했니, 싶을만큼 신군은 여기서 선물을 한방에 해결했다(라고 해봐야 2개). 그동안 내내 잊고 있었지만 이것은 신혼여행이었던 것이다. 신혼여행이란 돌아갈 때 친척들 선물을 작은 것이라도 하나씩 다 챙겨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신군의 탁월한 우유부단함을 마음껏 발휘하여 한참을 골랐고, 덕분에 나는 마지막으로 여유있게 구경을 할 수 있었다. 음, 돌이켜보건데 입구 근처에 예쁜 오르골들이 많이 있고,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점점 장난감스러워지고, 2층으로 올라가면 별로 살 것이 없어진다. 구경하는 재미랄까. 선물을 살 것이라면 입구에서 눈에 띄는 애들을 한두개 고르면 될 것 같다.
오르골 박물관 안의 수줍은 곰돌이와 한 컷. 이리온- 계산을 하고, 하나하나 꼼꼼히 포장해서 담아준 오르골들을 들고 가게를 나섰다. 나는 역으로 가서 표를 받고, 신군은 호텔로 가서 짐을 찾았다. 이런 분업 체제, 아주 좋아요.

돌아가는 길에도 사진 한방은 놓치지 않았는데, 음. 그러나.. 여기가 어딘지 사실 모르겠다. 오타루에서 다닌 길은 거의 지도도 보지 않고 대략 감으로 다녀서 어디를 어떻게 다녔는지도 모르겠고-
오늘은 무사히(!) 11시 04분 신치토세공항행 쾌속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동안 수고한 Hokkaido Rail Pass flexible 4 day ticket 과 신치토세공항행 지정석 좌석권. 사실 저 Rail Pass가 있으면 그냥 아무 기차나 타도 되지만, 그럴 경우 좌석이 없을 수도 있어서 굳이 지정석을 받아 열차에 탔던 것이다. 역시 쿠시로에서 호소카와 역 같은데 불쑥 내려볼 걸 그랬다는 아쉬움이 들었지만, 뭐. 쿠시로에서 기차를 놓쳤을 때 이미 제 값을 했달까. 그리고 우리가 실제 탄 거리만으로 금액을 따져봐도 패스 값은 충분히 했으니 성공적이라고 해야 할까. (키오스크에서 서비스 받은 녹차는 제외하고)

우리가 패스로 타고 다닌 구간을 개별 구입했을 때 요금 비교 (신군이 정리해 주었음)
|
일자 |
구간 |
금액 |
비고 |
| 8/18 |
Airport - Sapporo |
¥1,340 |
|
| 8/19 |
Sapporo - Abashiri |
¥9,640 |
特急 오호츠크 5호 |
| 8/22 |
Kushiro - Toro |
¥530 |
快速しれとこ |
| Toro - Kushiro |
¥830 |
くしろ湿原ノロッコ1호 |
| Kushiro - Obihiro |
¥2,420 |
普通列車 |
| Obihiro - Sapporo |
¥6,510 |
特急ス-パ-おおぞら12호 |
| Sapporo - Otaru |
¥620 |
구간快速いしかりライナ- |
| 8/23 |
Otaru - Airport |
¥2,040 |
|
| 합계 |
¥23,930 |
※ 패스 가격은 ¥ 18,000 |
기차 안에서 마지막(?)으로 북해도한정 삿포로 맥주 한잔. 이렇게 5박 6일의 여정이 끝나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그냥 끝난 것은 아니다. 휴-
신치토세 공항에서 체크인 하기 전에 매점에서 북해도한정 삿포로 맥주를 사려고 했더니 (맥주는 일본가면 꼭 사오는 お土産다. 보통은 다녀온 당일에 내가 마셔버렸지만.) 컵에 따라준다고 하는거다. '앗, 캔으로 가져갈건데요' 했더니 그럼 도착층에 있는 매점에서 사라고 알려주더라. 오- 그래서 신군 버려두고 한 층 내려가서 맥주를 한 주머니 (돈 되는대로) 사가지고 왔다는 얘기.
신군은 신혼여행 선물을 아직 챙기지 않은 다른 친척분들을 위해서 면세점에서 뭔가 골라 보려고 애썼지만 역시 살만한 것은 과자뿐이라는 내 조언을 확인하고 말았다. 그래서 돌아오는 우리 집에는 과자가 잔-뜩. (집에 오자마자 이름표 붙였다)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본 해안선. 안녕, 일본. 곧 다시 볼 거지만.
그냥 한 번 찍어본 하얀 구름. 내 인생도 저런 구름밭 위를 날고 있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