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날 아침은 료칸의 아침 식사로 시작하자. 다른 료칸에서는 방에 상을 가져와 차려주거나 공용 식당에서 식사를 주는데, 여기는 다른 층에 마련된 방에 상을 차려놓고 내려오라고 했다. 방은 독방으로 원래 묵는 방보다 조금 작지만 별반 다를 바 없는 방이었다. 상차림에 냄새나는 음식은 없으니 음식냄새 때문은 아닌 것 같고 손님이 없다보니 방이 남아서일까? 이유야 모르겠지만 - 이때쯤에는 슬슬 일본어에 지쳐서 물어보고 싶지도 않았다 - 엉망인 방에 들이지 않아 덜 미안해서 좋았다. 워낙에 계획없는 여행이었어서, 신군은 밤마다 다음날의 이동계획을 짜느라 바빴다. 나는 쌩- 무시하고 꼭 잤다. 이때만 해도 11시만 되면 무거운 눈꺼풀을 주체할 수 없는 건강한 신체였다. 이날도 신군은 지도를 한껏 늘어놓고 연구를 한 터였다. 그 상태로 아침에 온천욕을 하러 갔는데, 복도에서 여주인을 만났다. 유카타를 입고 수건을 든 채로 식당방으로 내려갔다가 나는 다시 카메라를 가지러 갔다.
ホテル養老牛의 아침식사전날 식사에서 우유로 만든 두부가 제일 눈에 띄었다면, 이날은 날계란. 카메라를 들고 내려가는 사이에 다시 안주인을 만났는데, 신군은 이미 날계란대로 좋다고 했다고 안주인이 계란을 익혀줄까 물었다. 마침 상에 낫토가 눈에 띄었기 때문에, 낫토랑 먹을테니 그냥 두라고 했다. 신군은 원래 안 익힌 계란은 안 먹는데 이날은 왜그랬나 모르겠다. 저 때는 계란이 하얀 계란이어서 '와! 신기해' 했는데, 지금은 미국에 온 뒤 하얀계란만 봐 와서 그런지 사진을 봐도 별 감흥이 없다. 사실 나는 낫토가 그다지 특별히 맛나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 후회했다. 아, 그리고 아주 신선하고 맛있는 우유가 있었다. 사진은 신군의 안경 안 쓴 얼굴이 나왔기 때문에 생략.
저 낫토의 지익- 늘어나는 실은 언제봐도 예술. 신군이 밤새(?) 짜 놓은 계획에 따라, 아칸 국립공원의 마슈코(摩周湖)의 세 전망대와 굿샤로코(屈斜路湖), 시간이 되면 아칸코(阿寒湖)까지 갔다가 쿠시로 습원을 가로질러 쿠시로까지 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조금 서둘러 길을 떠났다. 그래봤자 10시가 안 되었을 뿐이지만. 차가 있으니 짐을 마구 실을 수 있어 좋았다. 역시 여주인께서 차에 탈 때까지 배웅해주셨는데, 여기서도 조수석과 운전석을 바꾸어 문을 열었다가 태연하게 -마치 평소에는 신군이 운전했는데 오늘은 내가 운전하기로 한 듯이 - 다시 바꾸어 탔다.
여기가 우리가 묵은 ホテル養老牛. 입구에는 멍멍이가 있다.
여기가 원래 생각했던 だいいち. 나란히 붙어있다.
아참, 차를 빌릴 때 네비게이션도 빌렸다. -이것도 예약사항- 생판 모르는 길이니 네비게이션을 따라 다녔는데, 당연히 일본어로만 안내를 해줬다. 왼쪽 오른쪽 정도야 알아들었지만 길게 얘기하면 당황스러워서 지도를 항상 끼고 다녔다. 물론 네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제대로 입력했는지도 의심스럽고. 신군이 없었으면 나는 거의 그림 맞추기를 해야 했을 터였다. 여관에서 나가면서 마슈코를 찍으니 들어온 길과 반대방향을 가리켰는데 무시하고 원래 들어온 길로 다시 나갔다. 한국에서 네비게이션과 싸우며 다니던 버릇이 나왔달까. 물론 그리 나가도 문제는 없었다.
어제는 어두워서 제대로 못 보았던 - 혹은 자러 들어갔던 - 소들이 잔뜩 보였다. 간밤에 료칸을 찾아올 때는 비도 흩뿌리고 하늘도 짙게 내려앉은 것이 마녀의 집에 찾아가는 느낌이었는데, 이날 아침은 나름 파란 하늘도 보이고.. 잔디색은 또 어찌나 선명한지.
한가로우신 홀슈타인들1번 목적지는 우라마슈(裏魔周) 전망대. 길을 잘 찾아들고는 좋아라 했다. 오늘 일이 잘 풀리는구나..하고.


전망대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리니 바람이 상당했다. 추워서 점퍼를 찾으니... 없다. 트렁크를 뒤지다가 신군한테 '혹시 하얀 겉옷 못봤어요?' 라고 물었더니 봤댄다. 료칸방의 옷장안에서. 왜 안 챙겼느냐고 했더니, 원래 거기 있는 옷인 줄 알았댄다. 계속 입고 다녔는데! 어제도 입었는데! ㅠ_ㅠ "어떡해요? 옷 그거밖에 없어요?" '돌아가야죠! 읎어요. 비싼거예요'
그래도 사진은 찍고.
인물에 집중하셨을 테니 이번엔 경치를 감상하시라..
호수 방향. 위 사진과 같은 곳
반대 방향 -전망대 옆쪽 능선
전망대 위에서 내려다 본 휴게소 건물. 주차장에 Mazda양이 보인다. 휴게소에는 별로 살 것이 없었다.그래서 다시 돌아오는 길. 길 자체는 워낙 좋았기 때문에 돌아온다고 별로 짜증이 나진 않았다. 하긴, 옷을 잃어버린건 나니까. ㅋㅋ 사실 이 때의 길이 참 좋았는데, 좌우에 조림지가 펼쳐지고 길은 곧게 뻗어 있었다. 가끔 벌목장도 나오고. 신군이 숲속에서 잠시 쉬었다 가자는 것을 시간 없다고 그냥 지나쳐 갔는데 - 사실 세울만한 곳을 못 찾았기도 했다 - 이후에 쿠시로까지 가는 길에 이런 조림지는 다시 나오지 않았다. 신군은 쫌 서운해 했고 나는 많이 미안했다.


이번에는 네비게이션이 가르키는 대로 돌아갔는데, 거리상으로는 가까우나 군데군데가 공사중인 비포장도로였다. 어차피 자차 보험도 들어놨겠다, 신난다 재미난다 하며 비포장도로를 끝까지 따라갔다.
아니 이 18금 팻말은 무슨 의미?ㅋ
아까는 놓쳤던 牛 사진도 찍고.
다시 호텔 요우로우시. 신군이 옷 찾으러 들어간 사이에. 나는 쪽팔려서 들어가지 않았다 ㅡ.ㅡ이번에는 마슈코의 1, 3 전망대를 향해 갔다. 아까의 우라마슈 전망대와는 연결되어 있지 않지만, 1~3 전망대는 마슈호를 따라 이어진 길가에 있다. (앗, 2전망대는 없었던가?) 아무튼 나는 이때쯤부터 슬슬 화장실이 가고 싶었다. 먼저 나타난 것은 제 1전망대. 제1전망대는 휴게소 건물도 있고 꽤 규모가 있었는데, 들어가려고 하니 주차비를 받았다. 젠장! 주차장 입구에서 차를 빼서 3전망대로 향했다. 제 3 전망대 표지판. 그러나 제 3 전망대는 그저 전망대일뿐, 휴게소도 간이 화장실도 없었으니! 화장실이 있나 찾아볼까 생각했으나 웬 아저씨가 숲속에서 방뇨하는걸 보고 없다고 단정. 별 수 있나, 참아야지.
길가에 서 있는 전망대 간판. 저 너머로 보이는 호수는 摩周가 아니라 屈斜路湖일거다. (아마도)전망대는 호수가를 따라 꽤 길게 이어져 있다. 물론 아까의 우라마슈 전망대에서 본 것과 같은 호수이다. 방향은 물론 다르지만. 마슈코는 - 구샤로코나 아칸코도 - 칼데라 호인데, 곡옥 모양이어서, 우라마슈에서도 제3전망대에서도 한눈에 보긴 힘들다. 제 1 전망대는 어떤지 모르지만, 지도상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데 호수가 가장 많이 보이는 위치일 것 같다.

어쩐지 줄지어 올라가는 분위기

전망대는 이만큼 하고도 반대편에 이만큼이 더 이어져 있다.
제 3 전망대에서 본 마슈호. 저 가운데의 섬을 가지고 한참 장난을 쳤다.
마슈호에서 내려오는 길.. 도로변에서 그냥 볼 수 있는 유황천아침식사의 신선한 우유가 워낙 인상적이었어서 중간 편의점에서 북해도 우유를 샀다. 난 우유를 그닥 즐겨마시지 않지만 - 우유를 좋아했다면 키가 컸을텐데 ㅎ - 신군은 물대신 잘도 마셨다.
북해도 우유 광고배는 슬슬 고프고 이대로 가다간 또 편의점식품으로 식사를 때워야 하는게 아닐까 조마조마하던 중에 반갑게 나온 조그만 마을에서 식당을 찾다가, 문을 연 건지 아닌지 의심스러우나 영업중이라고 써붙인 라멘집을 찾아 들어갔다.

아직 배가 많이 고프지 않으니 비용절감차원에서 하나 가지고 나눠 먹을까 두 개를 시킬까 고민하다가, 어쩐지 취미로 운영하는 것 같은 주인 아저씨가 주문을 받으러 왔을 때에는 ひとず, ふたず 헛갈려서 몇 개를 주문했는지 모르게 되어버렸다. 아무래도 2개를 주문한 것 같아, 주인장에게 하나를 취소하려고 했는데 그걸 2개 해달란 소리로 이해하신 듯, 한 그릇을 내려놓고는 조금만 기다리란다. 나온 그릇을 보니 또 맛있어 보여서, 에라~ 모르겠다. 그냥 먹자. 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맛있었다.

하지만 이 집의 특별함은 그 다음에 있었으니. 일단 배를 채우고 나니 여유가 생겨, 지도책과 여행안내책들을 보면서 아칸호로 갈까 굿샤로호로 갈까 고민하고 있자니 주인아저씨가 슬그머니 여행 지도가 그려진 팜플렛들을 가져다 주었다. 벽에는 풍경 사진과 관광 포스터도 잔뜩. 계산하면서 우리는 신혼여행중이라고 했더니 주인아저씨가 결혼선물이라면서 이걸 주시는거다. 이것이 지도와 함께 가게 벽에 걸려있는 사진은 뾰로통하게 라면먹는 신군이 나왔으므로 생략.
친절하고 맛있는 라멘집 아저씨의 결혼선물
건너편의 비싸보이는 집에서는 종업원이 물을 버리고 있었다그리하여 향한곳은 굿샤로코호. 마슈호가 지리산 같은 느낌이라면 여기는 관악산; 아까는 전망대, 여기는 유원지. 일단 호수도 크고, 중간에 떠 있는 섬도 크고, 중요한 차이는 마슈코는 호숫가에 가까이 갈 수 없지만 굿샤로코는 호수에 배도 띄운다는 것. 호수 가장자리가 모래사장인데 여기서 노는 아해들도 많았다. 이 모래를 파면 온천물이 솟는다는 거다. 이날은 바람이 많이 불어서 오리배를 타는 사람은 없었다.

보트가 하나 동동 떠있다. 가까이 보이는 것은 中島。
모래사장에 앉을 자리를 만든 족탕. 나 원래 이런 건 빼놓지 않고 꼭 해 본다. 모자쓴 아저씨 스타일 특이하심
신 군은 발이 젖으면 HP가 감소한다면서 어디론가 사라졌다.
입구 양쪽으로 비슷하게 생긴 기념품점 건물이 하나씩 있다. 각각의 운영방식이 매우 다름.
굿샤로코 호수에서 잡힌 괴수. 성격은 온순한데 어린이 탑승객만 좋아한다.
'북해도'와 'KUMA' 가 그려진 옷. 이 PUMA 짝퉁 같은 KUMA(곰)는 시레토코부터 계속 있다.屈斜路湖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들어가면 좌우에 기념품과 스낵을 파는 가게가 각각 있다. 한 쪽은 매우 typical한 반면, 다른 한 쪽은 주인장께서 아이디어가 넘치시는지 특이하고 다양한 상술을 발휘하고 계셨다. 우리는 특이한 쪽을 먼저 갔었다. 홋카이도의 특산물은 일단 유제품 - 우유, 요구르트, 푸딩, 그리고 아이스다. 마슈의 아이스는 유명하다고 룸메상께서도 챙겨주셨는데, 당연히 여행책에도 여러 곳이 소개되어 있다. 이 '특이한 기념품' 점에서는 소프트 아이스크림도 메론, 바닐라와 함께 '당점한정' 피스타치오와 맥주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었는데, 나는 이 ビール アイス가 무쟈게 먹고 싶었던 것이다. 값은 무려 500엔. 소프트아이스크림이 500원도 아니고 500엔! 최고급 소프토크리-무. 신군한테 먹고 싶다고 했더니 "먹는거 가지고 장난치면 못써요" 하면서 계산대에 가까이 가지도 못하게 하는거다. 그러면서 반대편의 기념품점으로 갔는데, KUMA 티셔츠를 보면서도 계속 비-루 아이스 타령을 했더니 그곳에서 '평범한' 바닐라&초코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사줬다. 물론 소프트아이스크림 치고는 맛있었지만, 내가 먹고 싶은건 삐-루! 삐-루 아이스였단 말이다! 다시 어딜 가서 삐-루 아이스를 만날 것이냐! 차를 몰고 주차장을 빠져 나오면서, 삐-루 아이스를 사줄 때까지 앞으로 십 년간 계속 울궈먹겠다고 선언했다.
문제의 비-루 아이스
산을 돌아 내려와서 다시 마슈를 지나는데 아이스크림 가게가 왜 그렇게 많은 건지. 확실히 아이스-가 유명하긴 한가보다. 결국 신군, 그럴 듯해보이는(?) 아이스크림가게에 들어가 아이스크림을 사주었으나.. 여기에도 삐-루 아이스가 있을 리가 없으니, 2배 농축 소프트크리-무로 만족해야 했다. 삐-루 아이스 ㅠ_ㅠ

삐-루 아이스를 가지고 계속 툴툴거리면서도, 여행은 계속 되었다. 이 즈음에서 Mazda 양의 계기판은 나를 만난 후 400km를 달렸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루 반 만에 400km.
굿샤로코 호수의 옆면.
저 물에 손을 담가봤는데 미지근했는지 차가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삐-루 아이스 뿐.ㅋ마슈 시내를 지나서부터는 391번 도로를 따라, 철도와 나란히
한 번도 쉬지않고 달렸다. 신군이, 습원 가는 길에 중간에 낮잠잤다고 해서 고쳐쓴다. 아침부터 종일, 이틀째 운전을 한 터라 몹시 피곤했다. 사실 그런게... 결혼전에 내내 인사다니랴, 이사준비하랴 바빴지, 결혼식날은 전쟁이지, 출발 전날은 술퍼마셨지, 도착 첫날도 술퍼마셨지..(사실 결혼하고 한달 내내 술 안마신 날이 없을 정도 -_-), 둘째날은 6시간 기차 이동에, 셋째날도 8시간 가까이 운전했지, 안 피곤한게 이상한거 아닌가. 운전 못하는 신군은 교대도 못 해주고. 신군은 거기다가 여행계획짜느라 피곤했는지ㅋ 옆에서 졸면서 잠꼬대까지 했다! - 결국 어딘가 마을의 개천가에 차를 대고 조금 잤다. 얼마간 자고 일어나니 더이상 지체했다가는 어둡기 전에 습원을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도동 여행의 가장 큰 목적 중 하나가 습원이 아닌가. 작은 호수를 두 개인가 지나고, 주위가 어둑해지기 시작할 때 쿠시로 습원이 나왔다.
구름사이로 해가 지려 한다
드디어 나타난 쿠시로 습원 전망대 간판 앞에서 뭔가 진지하게 보고 있는 신군. 차를 세워두고 전망대에 올라갔다. 바이크가 하나 서 있었고 - 바이크 주인은 올라가는 길에 마주쳤다 - 곰이 나오니 차 안에 먹을 것을 두지 말라는 (엥?) 표지가 있었다. 어서 올라가서 어두워지기 내려오자고 했다. 여기서 올라갈 수 있는 전망대도 여러곳이 있었는데, 그 중에 가깝고 석양을 볼수 있는 서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나는 화장실이 몹시 가고 싶었으나 여기에도 화장실은 없었다. 그러나 이 전망대에 오르자마자 내가 한 일은.... 쉬- ㅋㅋ 신군더러 망보라 하고 오줌누면서 풀숲에서 아기곰이 나오면 어떡하지, 생각했다.
쿠시로 습원 전망대
습원과 마을. 습원 사이로 기차가 천천히 달린다.
습원은 어쩐지 늪과는 다른 느낌이다.. 본질적으로는 같은 거 아닌가?
습원에서도 쿠시로 시내까지는 한참을 더 가야 했다. 쿠시로 역 근처에 호텔이 많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길가에 민박이든 호텔이든 숙소 간판이 나올 때마다 들어가서 쉬고 내일 쿠시로까지 갈까하는 마음이 들었다. 뭐 그래도, 결국 쿠시로까지 갔다. 가는 길에 주유소에서 기름도 가득 채웠다. 주유소에서 가득 채워달라는 말을 뭐라고 해야 하지? 하다가 '만땅 아냐?' 했는데 주유소 직원이 정말 '만땅데쓰까?'라고 물어보더라. 쫌 웃겼다. 아바시리의 마즈다 렌터카에서, 기름이 가득 차 있으니 반납하기 전에 쿠시로 렌터카 사무실 앞 주유소에서 가득 채우라고 가르쳐 주었었는데, 쿠시로까지 정말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에 미리 주유를 했다. 모자라면 더 넣지 뭐. 하고. 결국 그대로 반납했지만.
그동안은 차가 별로 없는 길로만 다녔었는데 갑자기 길에 차는 많아지고, 시내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신호도 복잡해지고, 쿠시로역에서부터 갑자기 급 피로해졌다. 게다가 생각했던 호텔(개장한지 얼마 안 된 spa hotel)에서 주차비를 받는 바람에 다른 호텔에 갔더니 방이 없고, 다른 데는 너무 비싸고, 쿠시로역 주변에서 호텔찾아 삼만리를 했다. 나는 호텔 간판을 발견하면 차를 대고, 신군은 들어가서 방이 있나 물어보고. 그러다가 어느 호텔(인지 여관인지)의 경사진 주차장에서 마즈다양 바닥을 긁었다. 드르륵- . 시간이 갈 수록 방이 없는 호텔은 많아지고, 쿠시로역에서 떨어진 곳에는 어디쯤 호텔이 있을지 감도 안 잡히고.. 에라, 모르겠다. 하고 마즈다 렌터카로 갔다. 혹시 제휴되어 있는 호텔 있으면 소개해달라고 그러려고. 그래도 다른 렌터카보다는 '내일 반납할 건데요, 오늘 잘 데가 없어서..' 이 편이 낫지 않은가. 나는 영 없으면 아무데나 세워두고 차 안에서 그냥 잘 생각도 있었다. ;;
문닫기 15분전. 마즈다 렌터카 사무실에 들어간 뻔뻔한 두 사람은 호텔 명함을 좀 달라고 했다. 마즈다 렌터카의 기무라상은 몇 군데 호텔에 전화를 해보더니, 방이 없다고 하면서 전화번호부를 뒤졌다. 헉! 앞서 전화한 호텔은 역시 관계가 있는 듯 아는 사람을 찾았는데, 이번에는 그런 눈치도 아니었다. 서너 군데나 더 전화해 본 끝에 7140엔짜리 방이 있다고 하길래 무조건 예약해달라고 했다. 주차비를 받을 것 같아서, 차를 반납하고 짐을 들고 호텔까지 갈 생각으로 호텔이 머냐고 물었더니... 기무라상, 자기가 운전해서 호텔에 내려주고 차를 반납해주겠다 하는거다. 우와.. 땡큐! '아리가토 고쟈이마스'를 연발하며 호텔까지 갔다. 호텔은 Toyoko-inn.
toyoko-inn 도 지점이 꽤 여러 곳인 비즈니스 호텔 체인인 모양인데, 마음에 드는 것이 여럿 있었다. 말하자면.. 환경보호를 위해 재활용플라스틱으로 만들었다는 빗이라던가. 같은 이유로 일회용 샴푸/린스 파우치 대신 디스펜서를 비치했다는 안내문이라던가. 1층의 인터넷 코너라던가. 다리미판이 있다던가. 심지어 여성용 세면도구 세트를 주었는데 거기에 매니큐어 리무버가 있어서, 결혼식장의 신부가 매니큐어도 안하면 안된다구 해서 결혼식 이틀 전에 바른 아이보리 컬러를 드디어 지울 수 있게 되었다.
TOYOKO-INN 일단 렌터카도 반납했겠다 상당히 안심되는 기분이었기 때문에, 쿠시로의 밤거리를 거닐기로 했다. 쿠시로도 나름 항구 도시라 바다냄새가 날 거라고. 쿠시로에 대해선 거의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터라(쿠시로 어시장 말고는) 어디에 가야 식사를 할 수 있는지 몰랐다. 대로를 따라 왔다갔다 하면서 골목 안쪽을 들여다 보다가, 샐러리맨들이 퇴근후 한잔 하는 분위기의 가게에 들어갔다.

메뉴판을 보고 연구한 끝에 ..

신군은 맥주와 함께 이런 정식을 먹고,

나는 맥주와 함께 안주로 오뎅을 먹었다. 더 먹고 싶었는데 오뎅이 떨어져서 안 된다고 했다.

정말로 동네 아저씨들이 모이는 아지트 같은 분위기라서, 몇몇 단골손님들이 주인장과 잡담을 하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바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우리 두 사람에 시선이 집중되어서 잠시 여성 금지구역(?)인가 생각했지만, 칸막이 뒤의 어느 테이블에서 회사 회식에 참석한 듯한 여성들의 목소리가 들려서 안심. 그러나 아저씨들은 상당히 우호적이어서, 내가 맥주를 한 잔 더 마시려고 주인장을 어떻게 불러야 하나 쭈뼛거리고 있자, 눈치껏 '어이, 마쓰다! 여기 좀 봐줘!' 하고 주인을 불러 주었다. 한편, 도쿄에서 단신부임해왔다며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던 신군 옆자리 아저씨는 말상대가 생겼다는 기분이었는지 계속 말을 걸었다. 어디서 왔냐, 무슨 공부 하냐(신군에게), 한국의 정치는.. 등등 일본어와 영어를 섞어서. 분위기도 좋고 요리도 맛있어서 좀 더 먹고 싶었지만, 단신부임 아저씨와의 대화는 조금 피곤해서 - 지나친 관심은 사양해요- 맥주 2잔째에 일어나 나왔다. (맥주 200엔 X 4잔, 정식 700엔, 오뎅 300엔)
조금 아쉬웠기 때문에 숙소로 들어가는 길의 로손에서 사케와 오뎅 등을 샀다. 아까 이자가야에 있던 단골무리 아저씨들이 담배를 사러 왔다가 '오오~ 신혼부부! 좋겠네!' 하며 인사해주었다.
이때까지는 쿠시로의 인상이 좋았다.
이 날 밤의 한 잔은 쿠시로 습원 라벨이 붙어있는 청주. 4일차의 이동경로
